“자식 고생 안 시키고 잠든 듯이 조용히 가야지...“
“자식 고생 안 시키고 잠든 듯이 조용히 가야지...“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8.01.08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읍 구룡리 서구마을 새해맞이 풍경> 95세 노모의 무술년 새해소망

홍성읍 구룡리 서구마을 주민들

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4일 홍성읍 구룡리 서구마을 회관에는 희망찬 새해 설계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매년 새해가 되면 주민들은 마을 총회를 열고 지난 해와 올 한해의 마을 살림살이를 함께 논의하고 서로 덕담을 나누며 새해를 맞는다.

주민들은 저마다 가족의 건강과 자식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소박한 소망을 전한다.

“사는 것이 별것이데유! 7남매 행복하게 잘사는 모습 봤으니 내 할 일은 끝났고 자식들 고생안시키고 잠든 듯이 가면 그걸로 만족허유!”

마을 최고령자 조병예 할머니

마을의 최고령자인 조병예(96) 할머니의 새해소망이다. 올해 아흔여섯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하게 생활하고 계시는 조 할머니는 태안에서 태어나 19세 때 신랑 얼굴도 모른 채 홍성읍 구룡리 서구마을로 시집와서 76년째 살고 계시다. 이후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21세에 큰 아들을 낳은 후 5남 2녀를 키워온 조병례 할머니.

아직도 채소농사를 지어 직접 쌀 값과 반찬값을 마련할 정도인 조병례 할머니는 힘들었던 시집살이를 털어놓으며 옛날을 회상한다.

홍성에서 제일 무섭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호랑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갓 시집온 새댁은 호된 시집살이를 했다. 당시 시어머니가 직접 두부를 만들고 콩나물을 재배해 주면 한가득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남문 밖으로 팔러 나가곤 했다. 하루는 첫째를 임신한 상태로 여느 때와 같이 장사를 나간 할머니 앞에 갑자기 커다란 개가 나타나 위협을 해 너무 놀란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유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32세에 뇌졸중으로 남편과 사별한 후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60여년을 오롯이 7남매를 혼자 키우며 고된 삶을 살았다.

조 할머니의 하루일과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100세를 바라보는 연세에도 새벽같이 기상한 할머니는 집 안팎을 돌며 주변 정리를 하고 농번기에는 집 앞 텃밭에 콩, 깨, 마늘 등 손수 농사를 지어 자식들에게 보낸다. 건강을 생각해 맵고 짠 음식은 삼가고 시원하게 백김치를 담가 밥 한 공기를 비우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 말하는 조 할머니.

당시의 고된 삶은 잊은 채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다. 홍성에 살면서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오는 큰아들과 멀리 마산에 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안부전화를 하는 작은 아들. 자식들 생각해 농사지은 곡식을 보내주면 맛난 것 사드시라고 곡식 값의 두 세배 넘게 용돈을 보내주는 7남매에 대해 할머니의 쉼 없는 자랑이 이어진다.

조 할머니의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한 때는 마을회관에 나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 커피 두 잔에 드라마를 즐겨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이라고 한다.

또 다른 주민 심정구(81세) 씨는 “일년 내 힘들게 농사지어 제값도 못 받지만 농업은 유일하게 사는 낙”이라며 “모두 힘들다고 농사를 포기하면 소비자들이 어떻게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작은 보람으로 농업을 이어가고 있다. 올 해는 농부들이 피땀 흘린 댓가를 작게라도 보상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새해소망을 전했다.

구룡리 서구마을은 전체 40세대, 80여명의 주민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70대에서 80대 주민이 주를 이루는 서구마을은 20여년전 원인모를 이유로 1~2년새 마을의 20~30대 층 젊은이 20여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해서 현재 마을에는 40~50대 주민은 극소수에 불과해 고령화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을의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김논수 이장은 “마을 주민이 있어야 이장도 있는 것인데 해가 바뀔 수록 마을 어르신들이 연세가 드시면서 앞으로 10년 후, 주민 감소로 마을 활력을 잃을까 걱정 된다”며 “새해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좀 더 편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마을발전과 주민화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무술년 새해에는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을 떠나 수십년을 함께 살아온 순박한 시골 어르신들의 소박한 소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올바른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길 기원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